<스토너> 존 윌리엄스 (김승욱 역)
알에이치코리아 출판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자신이 이미 죽었는데도 오로지 고집스러운 의지력 덕분에 습관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며칠 동안 자신을 스쳐간 장소들,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묘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상황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강의를 하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빠질 수 없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동안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고든 핀치의 사무실을 나선 순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존재의 작은 중심에서 자라난 무감각한 공간 속 어딘가에서 자기 인생의 일부가 끝나버렸음을. 자신의 일부가 거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라서 다가오는 죽음을 거의 차분한 태도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촬영을 하는 기간 동안 나의 룸메이트였던 친구의 추천으로 본 책인데..
최근에 본 책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책이었다.
딱히 크게 잘못하지 않았고, 나름 열심히 살았던 한 사람이 삶이 극히 적은 기쁨과 수많은 고통과 인내로 점철되어 끝이 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아서? 기대에 맞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꿈의 크기가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는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말에 열광하며 노력을 뒤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그래 뭐 하려고 그렇게 애써..라는 마음들에서 그러다가 혹시 나도 스토너처럼 삶이 끝나버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넌 무엇을 기대하니?’
‘죽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까?’
결국 난 스토너가 자신의 일부를 죽어가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바라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디는 삶을 살아서 얻는 게 대체 무엇인가?
하루하루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그렇게 연명하는 하루들이 모여서 생을 마감하면 대체 죽음 앞에서 얼마나 허무할까..
고집스럽도록 착하고, 덜 이기적인 사람들이 왜 불행을 계속 선택하게 되는지를 알게 해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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