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1548
1445년 활자 인쇄술의 발명으로 지식은 더 이상 특정 권력계층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에티엔 드 라 보에시’도 당시 1522년에 출간된 ‘성서’와 다양한 고대 글들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15-16C는 개인의 지적 수준의 발달과 대항해의 시대로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본인이 접한 수 많은 책에서 권력자의 횡포와 자유에 대한 수동적 열망을 지닌 채 고통받아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았고,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그는 인민들의 자발적 복종을 개탄스러워했지만
지금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은 '자발적 복종'의 상태로 누군가에게 착취를 당하며 산다.
나 또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인해서 나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꿈이었던 직업에서 착취당했고, 언젠간 나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영광을 누릴 거라고 착각했다.
그들에게 나의 자유를 기꺼이 헌신하며 복종했다.
착취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발적 복종의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생계의 수단이 되는 직업은 중요하지만,
그게 내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흔들면서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는 자본가의 끝없는 착취와 가난의 굴레로 가는게 더 확률적으로 높다는 걸 인정했어야 한다.
한 직장에 내 인생의 전부를 거는 건 주식에서 말하는 리스크 관리가 전혀 안 된 무모한 도박에 불과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살기에 적당히 타협했다.
‘라 보에티’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비판한다. ‘자유’보다 더 중요한게 과연 무엇인가?
얼마 전 사무엘상을 영어로 필사를 하면서 밑에 내용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feat. 나무 위키 부분 참고)
예전에 성경을 사제들만 읽을 수 있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성경의 내용 속에는 정말 온갖 부당한 것들에 관한 것도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착취해야하는 다수가 이러한 내용을 읽고 자각하는 게 두려웠던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식의 접근을 막아내야 할 생존 본능이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자본가들로 통칭하면
그들은 시간당 시급을 작게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돈 벌기를 위해 쓰게 한다.
여가 시간을 없애서 노종자들이 읽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전략을 쓰면서 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해 나가고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최대의 착각은 '내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왜 우울한지 고민할 시간을 빼앗긴 채,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행복을 준다는 소비를 한다.
빠르게 회복은 했지만,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다.
더 큰 만족을 위한 소비를 위해 내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갈아 넣는다.
그 틈에서는 생각할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의 신성함을 말하면서 왜 정작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민주주의가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에 의해서 또 다른 권력구조와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이란 늘 상하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이상 이러한 구조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어쨌든 이 책은 내가 일로 인해 치이고 우울 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책이었고,
결국은 10년을 버텼던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는 기초 이론을 제공해주었다.
사람이 자유롭게 살면서 우울감 없이 지내려면
남들의 지시나 비교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경험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이 블로그의 시작이 나에겐 그런 과정의 시작이다.
자본에 예속 된 꿈이 아니라, 본인 만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4차 혁명 시대에 인간은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를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개인이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도 비교 당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Feat. 나무위키.
사무엘 상 8장 11~17절까지의 내용으로 표준새번역 기준으로 적자면 <"너희를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하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가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그는 너희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다. 그는 또 너희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가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께서는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렇게 주께서 사무엘의 입을 통해 경고한다. 압축해서 적자면 왕의 막강한 권한과 권력으로 남자들은 군사로 뽑아 총알받이처럼 쓰이거나 왕의 농지를 가꾸는 농부가 되거나 대장장이가 되어 무기들을 만들고 딸들은 궁녀가 되어 왕실의 안 살림을 맡게 되며 너희가 농사지은 수확물중 가장 좋은것을 가져갈것이며 끝내는 너희 모두가 왕의 노예가 되고 말것이라는 말로 상당히 소름끼치는 내용이지만 이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7절~9절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는 이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럴것임을 알고 있었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즉 "이집트를 탈출해 이스라엘로 돌아올때부터 툭하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의지해오더니 또 이러는구나,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왕이 생길 경우 일어날 참상만은 알려주겠다." 라는 말이다. 여호와께서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화 덕질기 > 문장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사> 한홍구.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것들 (0) | 2021.01.02 |
---|---|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1959-2014, 55년의 기록 (0) | 2021.01.02 |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팬심을 넘어선 탐나는 삶의 철학 (0) | 2021.01.02 |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내 인생의 문장들 (0) | 2020.12.30 |
존 윌리엄스 <스토너> 내 인생의 책. ‘죽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까?’ (0) | 2020.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