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최은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그중에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가 가장 좋았다.
그래서 표제작이 되긴했겠지만 많은 문장들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작가가 내 또래의 여성이라 자라오면서 겪었고, 느꼈던 것들이 비슷해서 인지 더 많은 공감이 되었다.
'쇼코의 미소' 속 주인공은 영화시나리오를 쓰면서 비루하게 지낸다.
‘꿈이라는 허울이 천천히 삶을 좀 먹어간다’고 생각했다.
그 문장이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영화 일을 10년 째 해오고 있었고,
첫 영화를 시작할 때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된다"라는 말에
막연히 입봉의 시기를 ‘10년 뒤’로 정했는데.. 그 날이 정말 왔다.
내 일기장에 쓰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시나리오도, 블로그도, 하다 못해 인스타그램에도 글도 쓰지 않았다.
‘난 글 쓰는데는 재주가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내가 재능이 없는게 아닐까?'
사실 나는 재능을 보여줄 글도 쓰지 않았고, 그 글로 입봉을 하려는 시도 조차 해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시작 조차 못하고 불안이 나를 좀 먹었다.
작품이 끝나고 쉴 때마다 우울감이 몰려왔다.
내가 나를 지금까지 속인 건 아닐까?
입봉을 하고 감독이 된다고 내가 행복할까?
그 꿈이 실연이 되기는 하는걸까?
이렇게 인생을 낭비하는게 맞나?
‘꿈이라는 허울이 천천히 삶을 좀 먹어간다’는 문장을 읽고 며칠을 그 문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 더는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 깊이 결합되고 싶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애와 함께했던 그 시간은 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내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나이, 환경, 혹은 누군가의 편견 때문에 차별받아본 기억이 있을 테고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되같아주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자극해서 그 반응을 보고 싶은 건가.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 자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그들이 진심으로 가엽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때는 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연애의 감정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보다 사랑받지 못할 까 봐 전전긍긍하다 관계를 놓아 버렸다.
둘 중에 한 명만 선택해서 사랑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된다는 감각을 알지 못했다.
소설집에 실린 모든 단편에 공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떠한 책은 하나의 문장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
<쇼코의 미소>는 많은 부분에서 내가 숨기고 싶었던 나의 이면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중에서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씬짜오, 씬짜오」 중에서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에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손을 뗐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한지와 영주」 중에서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한지와 영주」 중에서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중에서
밝은 밤 + 쇼코의 미소 세트 전2권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문화 덕질기 > 문장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사> 한홍구.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것들 (0) | 2021.01.02 |
---|---|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1959-2014, 55년의 기록 (0) | 2021.01.02 |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팬심을 넘어선 탐나는 삶의 철학 (0) | 2021.01.02 |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삶이 힘들 때 마다 읽는 책 (0) | 2021.01.01 |
존 윌리엄스 <스토너> 내 인생의 책. ‘죽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까?’ (0) | 2020.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