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속에서 등장했던 책이라 내내 읽어야지 하다가 뒤늦게 보았다.
책은 노벨문학상 수장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을 엮은 것이다.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표제작이 된 <19호실로 가다>와 <옥상 위의 여자>가 가장 인상 깊었다.
<19호실로 가다> 는 결혼 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자유의지를 모두 포기한 전업주부의 이야기이다.
얼마 전 보았던 <스토너>가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순응하며 살았던 한 남성의 허망한 자기 고백이었다면,
<19호실로 가다>는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가꾸던 수잔의 자기 결정권이 없는 상태의 불행을 말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전업주부가 느끼는 고통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퇴근 후 집이 가지는 의미가 휴식이겠지만
전업주부에겐 늘 타인을 향한 돌봄 노동의 연속이다.
애들과 남편이 모두 집을 나갔을 때 혼자 만의 시간이 가장 좋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누구나 그 어떤 역할과 의무, 프레임을 벗어나 오롯이 혼자인 자기 자신을 알아야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에겐 그런 공간이 간절했고, 런던의 후미진 호텔의 '19호실'이 대안이 되었다.
그곳이 화려하거나 더러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수잔의 남편인 매튜는 일정 시간 동안 밖을 나가 있는 그가 차라리 애인이 생겼기를 바란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수잔은 그 공간을 지키는게 중요했기에 결국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주어버린다.
그러자 매튜는 안심을 하고 자기의 불륜을 고백을 한다.
인간은 일정부분 이기적이고, 자신만의 영역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고독과 불안함을 느낀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도 누구나 ’ 19호실’ 이 필요하다.
누가 보아도 완벽하지만, 그 곳에 오로지 자신으로 지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결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걸 돌아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또한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행복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자살에 많은 이들이 쉽게 비난을 한다.
뭐가 부족해서?
타인의 시선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답게 보낼 수 있는 순간들이 많지 않아 불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왜 다 가졌는데 행복할 수 없는거지라는 문제에 빠져 더 우울했을 것이다.
그 속에 자기는 없고, 자기를 바라보는 타인들만 있을 뿐이다.
본인 조차 타인들이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 못한 채 휘둘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두고 두고 읽으며 공감받고 치유 받고 싶은 책이다.
나 자신으로 살자.
![]() |
|
'문화 덕질기 > 문장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렇게 쉽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 <복안의 영상> (0) | 2021.01.19 |
---|---|
'낙태죄 폐지' 출산정책의 그늘 <개구리> 모옌 (0) | 2021.01.19 |
타인의 불행에 염치없이 위로를 받는다 <김지은입니다> (0) | 2021.01.16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쉽게 글 쓰는 법 (0) | 2021.01.13 |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내 속에 차오르는 물욕과 소유욕 (0) | 2021.0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