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안의 영상 - 하시모토 시노부
같이 일했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의 추천으로 본 책인데,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가는 것과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거장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지켜본 자의 고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그가 나에게 이 책을 권했을 때는 제목처럼 두 명의 시선에서 더 완성 높은 영화를 만들자는 의도였겠지만
결국은 자발적으로 성실히 일하는 노예가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써낸 장면들에 관해서 블라인드로 선택을 받았지만,
결국 자신이 쓴 장면보다 내가 쓴 게 낫다는 평가가 기분이 나빠서 그는 결국 선택하지 않았다.
한 개인의 평생의 작업에서 늘 최고치가 있다면 추락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거장의 추락을 지지하지 않는다.
사회가 전혀 실패의 관용을 주지 않으니 최고의 자리에 올라도 많은 사람들이 늘 불안에 시달리겠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나도 주변에서 예전만 못하고 무너져가는 거장들을 보면 마음이 헛헛했다.
나 조차도 이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패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기 때문에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하시모토 시노부도 정말 인간적 이게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지만,
말년에 망가져가는 작품을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시사회도 가지 않고,
함께 작업해달라는 것도 거절했다고 말한다.
너무 했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 편으로 같이 침몰하는 배에 탈 순 없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는 돈에 대해 눈이 밝았고, 이후로도 잘 나갔다.
그리고 '구라사와 아키라'와 함께 했던 경험마저 돈으로 만들었다.
계속해서 올라가야만 하는 세상에 살면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은인들도 버리면서 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능력이 없는데 무리하는 감독 탓이라고 하기에도 슬프고, 그걸 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에도 힘들다.
그냥 정말 자신을 믿고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쨌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업 방식 중에
두 명의 작가가 함께 글을 쓰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게 있었는데
협업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구조의 구멍이 없이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흥미로웠다.
최근에 작업한 시나리오를 친한 작가와 함께 이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구조를 같이 짰었는데 그때 정말 즐거웠다.
그 과정들이 정말 즐거워서 결과를 떠나서 이렇게만 작업할 수 있다면 평생을 작가로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타인이 바라보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이러한 순간들의 연속들이 모이면 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받아들이면
좀 더 쉬운 삶을 살려나?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으면서도 이게 내 끝이면 어쩌지 라는 마음들이 두려움을 낳는 것 같다.
그 두려움이 마음을 좀 먹어 강박이 되고, 수준 이하의 작품들이 나오는 건가 쉽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영화감독은 부를 누리기보단 명예직에 가까운데..
거의 대부분의 감독이 화려함 뒤에 너무 많이 초라하고 가난하게 늙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순간과 삶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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