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양귀자
내가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지.. 이 책이 흡입력이 있는 건지..
이틀 밤에 걸쳐 순쉽간에 읽었다.
초반에는 주인공을 대변하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시 돋친 시점이 불편했고,
이런 자기 파괴적인 글을 읽어서 남는게 뭐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불편했던 문장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 밖에 위로할 수 없다.”
라는 문장이었다.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SNS의 타인의 행복한 삶을 보고 좌절감을 느끼고,
뉴스의 남의 불행을 보고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고 되뇌는 나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흑백의 논리를 좋아했고,
계획을 세우는 게 안전하다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편인 나는 주인공이 갈등하는 두 남자 중에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영규’에 가까웠다.
소설 속 로맨스라면 응당 순간을 살고, 감성적이며,
예쁘게 말 할 줄 아는 ‘김장우’와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길 바랬겠지만
읽다 보니 어느덧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나영규’랑 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연애까지 돌아보면서 내가 지금 너무 현실감 없는 남자랑
언젠간 결혼할지 모른다고 태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라는 무서운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작가의 말대로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라 찰나의 결과만 놓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순 없지만,
작가는 미리 쌍둥이 엄마들의 삶으로 결론을 보여주고 ‘안진진’이 가지지 못했던 삶을 살아보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것만이 이유일까?
이건 마치 인생 많이 살아본 어느 꼰대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처럼 찝찝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라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받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현실에서 얻은 감동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야기’ 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 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소설가나 영화감독이나 창작하는 인간들의 지향점이 다르지 않기에 그녀의 말이 공감이 갔다.
위쪽의 감상은 내가 1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일기장에 썼던 기록이었다.
그사이 나는 많이 바뀌었고,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바뀌었다.
그저 꼰대 같기만 했던 작가의 말에 일정 부분 공감이 되었고
가난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현실감이라는 건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며, 나의 태도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라는 말의 단순함만큼 허망하다.
하지만 삶의 많은 진리들이 대부분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물리적으로 읽은 책의 숫자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한 번 본 책은 다시 보지 않았는데, 그러한 생각에서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의지와 감정에 따라서 한 소설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매번 달라졌다.
'미니멀리즘'의 유행으로 많은 책을 처분했고, 실제로도 홀가분해진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다시 보고 싶어 진 책들이 많아서 후회하는 중이다.
그렇게 뼈를 깎는 깊은 후회는 아니고,
앞으로 책은 처분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지기로 한다.
'문화 덕질기 > 문장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쉽게 글 쓰는 법 (0) | 2021.01.13 |
---|---|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내 속에 차오르는 물욕과 소유욕 (0) | 2021.01.12 |
<연필로 쓰기> 김훈. 밥 처럼 정갈하게 잘 지은 문장들 (0) | 2021.01.05 |
모든 지식의 목차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 제로편>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0) | 2021.01.04 |
<핑거스미스> 영화 '아가씨' 와 다른 결말 원작소설의 강렬함 (0) | 2021.01.04 |
댓글